기억에 남는 빈티지? 오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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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징공관라지오 작성일17-04-24 21:51 조회1,881회 댓글7건본문
요즘 나오는 오디오들은 크건작건 소리도 좋고 기능도 다양하고 게다가 모양도 멋지고, 그야말로 어디하나
나무랄데가 없습니다만.. (가격은 빼고ㅠㅠ)
그럼에도 절실하게 가지고 싶은 생각은 들지않는데, 비단 경제적 이유때문만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반면에 제가 음악을 처음 듣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제일 곁에 두고 싶었던 기기는 70년 중후반쯤
중학교 시절에 접한 자코라는 미니카세트플레이어 였습니다.
지금 기기와 비교하면 미니라고 할 수도 없을 크기를 가진, 디자인도 품질도 그러한 수준의 모습입니다만,
그래도 당시에 보이던 쉐이코 같은 가방만한 포터블카세트와는 비교도 못할 작은 크기에, 라지오와 카세트의
일체형이었기에, 언제 어디서나 듣던 음악을 쉽게 녹음하고 편히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던 기기였습니다.
기억해보면 지금 제가 탄노이 실버나 마란쯔 7을 가지고 싶은 욕심보다, 수십배는 더 강렬했던 소유욕이었죠.
물론 당시에도 집에는 ar2x정도 크기의 스피커가 양쪽에 놓인, 카세트와 8트랙까지 겸비한 국산 전축이 있었지만
폼겸 장식겸 안방에 놓여서 저만이 어찌할 수 있는 오디오는 아니었기에 그다지 애착은 크지 않았고, 그나마 제가
항상 듣던 전파상 진열대에서 가져온, 이름모를 회사의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작긴 했지만 그저 음악만
들어야 하는 수동적인 물건이었죠.
비록 전파상 라디오이지만 그때도 4석이니 6석이니로 성능을 나름 구분했었는데, 팥알만한 검은 트랜지스터 숫자가
많을 수록 좋은 라지오로 취급 받았습니다.
별것 아닌 비둘기표 라디오지만, 오디오세계에서 늘 그러하 듯 마이너리그에서도 그러한 구분은 늘 존재해 왔지요.
자코는 당시에는 첨단을 달리는 처음보는 크기와 기능이었기에, 보는 순간 제 마음은 사뭇 설레이고 말았습니다.
엉겹결에 친구에게 끌려갔던.. 학예회에서 피아노 치던 여학생의 홍조 띈 고운 자태를 엿본 이후로 말이죠.
지금도 기억나는 광고는 "너는 크고 나는 작고 그래서 자코~" 아마 그런 문구 였다고 기억됩니다.
공부하다 슬며시 또는 잠자리 이불속에서 남 몰래, 야심한 밤의 음악프로를 듣다 마음에 드는 노래를 녹음하기에
딱 좋은 물건이었는데, 모습을 생각하며 다이알을 돌려보거나 녹음버튼을 눌러대는 상상을 하곤 했더랬죠.
물론 당시에도 일본이나 미국에는 더 작은 크기의 카세트플레이어가 있었겠지만, 당시 저같은 학생들로서는
외제품을 구입한다는 생각은 커녕, 마란쯔 맥킨토시 산수이란 존재조차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몇년후에 소니 워크맨이 보따리상에 의해 국내에도 소개 되었지만, 완성도야 어떻던 이전까지는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크기의 카세트플레이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과 달리 소리는 들어볼데도 없었지만, 아무튼 이 작은 녹음기가 당시 저의 마음을 온통 빼았아가버렸는데
그때부터 자코를 사기위해 몇푼 되도않는 용돈을 아끼고 모으는 남다른 고행이 오랜동안 이어졌더랬습니다.
한창 간식이라도 사먹을 때라,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기에 지금도 그 소리가 어떠한지는 알바가 없습니다만..
여담입니다만 당시 동아방송 최윤락이란 디제이가 하던 프로그램에 엽서랑 편지를 보내서, 소산전자 헤드폰도 받고
책도 몇번씩 받고 했었답니다.
혹시 아시는분 계시나요? 소산전자.. 수십년이 지났는데 헤드폰메이커가 생각이 나는군요. 얼마나 좋았으면 ^^
하나더 역시 수십년이 지났는데 살짝만 쳐도 군번과 총번이 술술 기어나옵니다. 얼마나 굴렀으면 ㅠㅠ
또 하나 기억날만한 것은,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다 아실 듯한 90년 초에 발매 된 옥소리 사운드카드입니다.
컴퓨터가 막 DOS를 벗어나던 시절인가에, 국내에서 최초로 출시 된 사운드카드였나 그럴겁니다.
아무튼 당시의 컴퓨터란 지금과 달리, 사운트카드를 장착했다고 해서 바로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었고,
IRQ나 어드레스라는 복잡한 설정을 일일이 해주어어야 비로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결코 마다하지 않았지요.
부품간에 궁합이라도 안맞게 되면, 몇시간을 지지고 볶다가 포기할쯤 되서나 소리를 겨우 들을 수 있었는데
한음한음 끊어져 들리는 한두비트쯤 되는 미디음의 조악하고도 단순한 소리였지만..
지금 연결 된 제 메르디안 DAC에서 나오는 화려한 사운드에 비교할 수는 없어도, 소리에 대한 감동만큼은 정말 제대로
였던 경험이었습니다.
당시 처음 구입한 컴퓨터게임이 미리내의 "그날이 오면" 이었는데, 사운드카드가 없어서 눈팅만 하고 있다가
옥소리가 선전한 옥소리카드를 구입해 달아주니, 그야말로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는 컴퓨터 환경이 구현 되었던 것이었는데,
사운드카드에 마이크를 연결해서 방안에 가라오케를 꾸미고, 가족들을 불러와 첨단 기기라도 되는 양 폼 잡던 기억도
새록합니다.
아! 당시에는 지금의 골드문트니 카운터포인터니도 흉내못 낼 첨단기기가 맞기는 맞군요^^
지금보면 유치할 듯 하지만, 그 시절의 저에게는 맥킨토시 탄노이 못지않는 소중하고도 기억에 남는 기기이자 오디오 생활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걸 나말고 누가 또 기억할까?
혹시나 하고 자코 카세트를 검색하니, 어느분께서 올려놓으신 사진이 있기에 첨부해보는데 저렇게 생겼습니다.
옥소리의 젊었을 때 사진을 보니 회원님들께서도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은데.. 이제는 자신들도 빈티지가 되어가고 있으니~
또한, 당시 생생한 원음의 최고급 DAC?로 플레이 된 미리내의 "그날이 오면3" ost도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두번째 사진도 jpg 그림파일입니다. 원래 2번째 파일은 mp4 동영상을 넣게 되있어서 그런지 저리 동글뱅이가 나오는군요.
눌러도 옥소리의 옥소리같은 노래소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http://samwisethebrave.tistory.com/entry/games-music-mirinae-dragon-force3-logosong
위에 링크 누르시면 노래가 3가지 나오는데, 아시겠지만 사운드칩이 다른겁니다.
뚜뚜루 뚜루뚜뚜 뚜루뚜루~ ♪♪ ♬
투박한 저 소리가 지금 듣는 앰프 소리 못지 않았다 말씀 드릴 수 있음이란, 굳이 소리가 좋아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들어보면 그 소리가 그 소리이겠지만, 당시에는 롤랜드가 더 좋으니 애들립이 더 좋으니 유저간에 하이텔이니 천리안이니
띠띠띠띠 띠띠디 삐이~
PC에 모뎀으로 전화접속을 해가지고설랑 밤새 토론하고 각론을 벌이고 그랬었는데~
당시나 지금이나, 오디오쟁이들이 알텍이니 탄노이니 쓸데 없는 논쟁하는 것과 다를 바 없죠ㅋㅋ
정작 읽어보시니 제목과는 달리,구석에 굴러다니는 오래 된 사운드카드와 고물상에서도 취급하지 않을 낡은 카세트녹음기
이야기 였기에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도 계실것 같습니다만, 제게는 그러한 사연이 깃들고 가치어린 추억이 남겨진
물건들 이었기에 빈티지라 표현하였음을, 이해해주시고 편히 보아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댓글목록
박태훈님의 댓글
박태훈 작성일
ㅎㅎ
고등시절 판떼기 몇장 들고 포터블 레코드 플레이어 가지고 친구들과 야외에 가서 춤도 추고
"낙엽지던 그 숲 속에, 파란 바닷가에 떨리는 손 잡아주던 너..."
지금은 가수 이름도 잘 생각 나지는 않지만 멜로디만 기억나네요 ㅋㅋ
박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오디오와 관련된 고만 고만한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중때는 안쓰는 라디오를 볼륨부분에 마이크를 달면 소리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이용해서 집 안의 인터폰을 만들어서 사용했으니
(때로는 소형 스피커를 마이크 대신에 사용하기도 했지요.)
그러고 보니 저는 역시 자작파인가 봅니다.^^
징공관라지오님의 댓글
징공관라지오
원장님 거창하게 포트블 레코드 플에이어가 뭐입니까?
빡빡머리 교복입은 촌티나게 야전이라 해야 당시의 기분이 느껴지는거죠.
나팔바지에 트위스트.. 실은 교련복에 막춤ㅋㅋ
지금은 전철만 타도 갈수 있는 춘천이나 강촌도 그리 멀어서, 야외라 봤자 학교 뒷산이나 집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었고, 뭐 그때는 강남이나 반포도 전부 개고리 올챙이 놀던 논밭골 동네였으니..
암튼 원장님께서는 그렇게 놀고 잡생각 하셨어도 그 어렵다는 의대 가신거 보면..
음악에 빠지지 않으셨다면 지금쯤~ 그래도 후회는 없으시죠^^
박태훈님의 댓글
박태훈
원래 제일 좋아하는 분야는 전기와 목공 기계분야지요.
직업으로 보면 만드는 일, 개발하는 일이 제일 즐겁지요. 가지 못한 길입니다.
의사로도 제대로 한것이 없지만...
음악에 빠져서 잠시 행복했지요.
징공관라지오님의 댓글
징공관라지오
저도 무엇을 만지고 만들는 것을 좋아했던 공돌이로서 오랜동안 개발을 해왔지만
직업과 취미로서의 일이란, 만족도에 비교할 수 없을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당시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길을 선택하라면..
힘이 들지언정 조각이나 디자인같은 자신만의 열정을 다 쏟을 수 있는, 장인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해도, 생활을 위한 또다른 어려움이 있었겠지요.
요즘 TV에 소개되는 것처럼 어디에 쳐박혀서 살아가는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맘 굴뚝같습니다만
살아가는데 그리 팍팍하지 않은 지금 이시점에서도~
이 또한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길이다 싶습니다.
생각컨데 어떤 길을 선택햇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이 제일 바람직하지 않을런지요.
박태훈님의 댓글
박태훈아하 야전 이제 기억나네요 ㅋㅋ
Analogue님의 댓글
Analogue 작성일중딩 때 외삼촌리 월남전 갔다 오면서 사온 소니 스테레오 라디오가 생각납니다. 그걸로 방송을 녹음한다고 난리치고 그랬는데요. 곡이 끝날 때 자연스럽게 소리가 작아지게 할 방법을 찾느라 친구랑 궁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결국은 실패 했지요.
징공관라지오님의 댓글
징공관라지오
그 시절 라디오 녹음은 아나운서 멘트나 광고 땜시 앞뒤가 짤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원하던 노래를 녹음 할라치면 맘이 조마조마 했었지요. 해서 나중에는
동네 LP판매점에다가 목록 주고 녹음해 달라 했는데, 거의 선곡이 되었고 음질도 꽤 괜찮았습니다.
방송국에 애청자가 사연과 함께 듣고 싶은 노래로 신청 되는 경우에는, 녹음하겠거니 해서 디제이가 알아서
앞뒤의 잡소리를 빼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저같은 경우 이런경우를 놓지지 않았죠.
한번은 딥퍼플의 에이프릴을 녹음하는데.. 클래식도 아닌 것이 길이가 십몇분이었죠.
잘 나가다가 막판에 광고가 낑겨 들어와서 다 지워버린 적도 기억납니다.
까짓 몇초 그나마 페이드아웃 때 잡소리 껴든거기에, 대충 들으면 되는데, 오됴쟁이들 그놈의 결벽증 때문에..
